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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I칼럼 7월호] 나래이엔씨 이재군 대표 CEO 인터뷰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바둑판의 돌을 놓는 것과 같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선택은 조직의 도약을 부르지만, 잘못된 선택은 조직의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리더들은 선택의 순간, 어떤 기준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그들이 고민했던 역사적 순간들을 청취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읽는 통찰을 얻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본 코너의 운영 목적이다. 이번 달의 주인공은 나래이엔씨 이재군 대표이다. 

“회사를 택할 것인가! 존경하는 선배를 따를 것인가! 

내 인생의 틀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디스플레이 공장을 1/20로 축소한 미니어쳐를 보면서 설명하고 있는 이재군 대표)

 

Q1. 회사소개를 먼저 해달라. 나래이엔씨는 어떤 회사인가?

당사는 반도체, 전자, 제약, 바이오산업의 고청정 환경에 대한 클린룸시스템 설계와 시공을 하고 있습니다. 산업용 클린룸(ICR, Industrial Clean Room)에서는 ISO14001기준과 제약/바이오 클린룸(BCR, Bio Clean Room)에서는 FDA/EUGMP/KGMP 규격에 맞는 설계와 시공까지 고객사가 요구하는 최적의 생산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준비된 전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문기업으로서 설계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통해 고객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현재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Q2. 자기소개를 좀 해달라. 개인 이력이 궁금하다.

기계공학과를 나왔습니다. 1987년 학교졸업후, 공조설비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작은 설계사무소에서 엔지니어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LG엔지니어링에 스카우트되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성장기인 10년동안 LG그룹 계열사의 클린룸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IMF가 터졌고 부서의 임원이 회사를 창업하면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 함께 LG를 나왔습니다. 이후, 약 10여년 동안 예전 직장의 동료들과 일하다 2009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Q3. 본인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두 가지 사건이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LG를 떠날 때였고, 두 번째는 후배들과 함께 지금의 나래이엔씨를 만들 때입니다.

먼저 LG를 떠날 때의 사연을 좀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비교적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97년 발생한 IMF는 저에게 많은 변화를 강요했습니다. IMF가 발생하고 국가 모든 산업이 대격변기에 들어서면서 LG그룹도 그 태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GS건설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99년 제가 근무했던 LG엔니지어링이 LG건설과 합병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사업무의 통폐합 조직축소 등의 구조조정이 있었고, 그러면서 정말 잘 나가던 선배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믿고 따랐던 임원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분이 “창업을 할 건데 같이 하자”고 저에게 권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추구하던 저에게는 정말 심각한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날 몇 일을 고민했습니다. 회사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존경하는 선배를 택할 것인가! 내 인생의 틀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따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내의 심정은 지금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어느 부인이 안정적인 대기업을 때려치고 벤처회사로 가는 신랑을 좋아하겠습니까?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아내가 반대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계속해서 설득을 했고, 3개월만에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LG라는 안정적인 둥지를 버리고 미세한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작은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이 정말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3개월동안 와이프와 냉전을 보냈던 것도 저에게는 정말 고통이었습니다. 아내와 심하게 싸운 것은 그 때가 유일합니다.

두 번째는 지금의 회사를 만들 때의 일화입니다. 참고로 ‘나래’는 ‘날개’의 순 우리말입니다. ‘날개를 펴고 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전문 엔니지어링 집단이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사명을 나래이엔씨로 쓰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회사가 성장하면서 CEO를 맡았던 선배가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LG에서 나올 때에 같이 행동을 한 친구가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대표를 하던 선배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하면서 “누가 사장을 하면 좋겠냐”고 의견을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저는 “영업성향이 강한 친구가 CEO를 맡고, 저는 설계분야를 책임지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대표를 맡게 되었는데, 저랑 부딪히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독불장군’이라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다 큰 성인들이 만나서 일을 하는데, 의견이 다 맞을리가 있겠습니까? 맞지 않은 각자의 생각을 조율하면서 다수가 공감하는 합리적 결론을 내리는 게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같이 창업한 저에게 조차도 함부로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한테도 이런데, 직원들에게는 오죽했겠습니까? 결국, 직원들이 저에게 찾아와 따로 회사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고, 후배들을 믿고 창업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 때가 제 인생의 두번째 전환기였다고 생각합니다. 40대 후반이었는데, 많은 고민이 또 들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으나 과연 내가 사업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Q4.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하는 경영활동이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엔지니어로서 30대 초반에 수행한 ‘해외질병 차폐연구시설’건설 프로젝트였다고 봅니다. 당시 저는 LG엔지니어링에서 설계전문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아마도 1992년 겨울이었을 겁니다. 세계적으로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생겨나던 때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광우병으로 죽어가는 소들의 영상이 소개되면서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제적인 예방을 표방한 우리나라 정부는 ‘해외질병 차폐연구시설’을 짓기로 하고 설계 시설을 포함한 모든 작업을 LG엔지니어링에 맡겼습니다. 여기에 제가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국내에는 전문가도 없었고 샘플도 없었기 때문에 해외에 설치된 장치를 보면서 연구하고 제작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2년 정도의 기간이었는데,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갖는 위대함과 무게감을 그 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스위스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몰래 도면도 촬영하고 통사정도 하고 하면서 기술습득을 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초반 삼성전자 기술진들이 일본에서 반도체 기술 이전 받으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때는 조국을 위해서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이라 불리는 고산씨가 강연회에서 “국민들이 준 돈으로 여기에 와 있다. 하나라도 배워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떤 심정이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다행히도 시간이 가면서 난제라고 여겼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는 날들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그 때 제 나이 30대 초반이었는데, 그 때 밤낮없이 일했던 2년의 기간이 엔지니어링에 대한 스킬과 숙련도는 물론, 자존감의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 듯합니다. 그 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천상 엔지니어인 모양입니다.

 

Q5. 사람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 사람의 인성을 봅니다.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인성이 성장해서 사회 생활을 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인으로서 학력과 능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본 인성이 받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조직불화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실력은 다소 떨어진다 해도 인성이 좋으면 좋은 성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 직원들을 채용해서 지켜본 결과에 의해 내린 결론입니다. 인격형성이 잘 못된 친구는 표면적으로는 일을 잘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본인의 진짜 인성이 나오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결국에는 적응을 못하면서 조직에도 피해를 끼치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은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확실히 갖게 되었습니다.

Q6. 100인 100색의 직장인 행동유형을 경험했을 것이다. 대표님의 회사나 일반적인 직장인의 바람직한 행동,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개인적 가치관이 궁금하다.  

직장인으로서 필요한 것은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업무에 적극적이고 회사 비전에 맞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면서 회사 발전에도 기여하고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반면, 직장인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부정직입니다. 초창기 저희 회사에 정직하지 못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퇴사를 했는데, 그 친구의 특징이 거짓말에 능숙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정직하지 못한 행동으로 회사 이미지를 훼손하고, 금전적 손해를 끼치거나,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을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거짓으로 덮으려는 행동은 절대 용납이 안됩니다.

 

Q7. CEO의 가장 중요한 마인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화를 많이 내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아마도 직장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그런 듯합니다. 저는 지시와 통제보다는 직원들의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 주는 지점에서 훨씬 동기부여가 되고 행복감이 나옵니다. 업무 수행의 기술적 도움이 필요한 시기를 파악해서 지원해주고, 주어진 시간 안에 성과가 나오게 끔 유도해 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소위 말하는 ‘서번트리더십’이 저의 경경영스타일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서번트리더십의 마인드로 지금의 회사를 이끌어갈 생각입니다.

🔈 리더인터뷰는 HDI인간개발연구원과 SGI지속성장연구소에 소속된 회원사 CEO들을 대상으로 취재하는 기획기사로서 저작권은 양 기관에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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