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재형장학회 김창송 회장의 ‘작은 꿈’
요즘 내 생각들 2011/09/08 20:30 정운현
이날 모임을 주도한 사람은 김창송 최재형장학회 회장으로, 그는 올해 80세의 기업인(성원교역 회장)입니다. 김 회장이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든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김 회장은 한-러수교 20주년 기념 및 연해주 고려인문화센터 개관 1주년 긴념행사 참석차 동북아연대 회원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했습니다. 행사를 마친 후 김 회장 일행은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는데 그 때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남아 있는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안내자는 이 곳이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애국투사들의 아지트였고, 또 이 집 주인은 당시 러시아에서 큰 사업을 하며 애국지사들을 후원한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대륙의 영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
100여년 전 노비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에서 자수성가한 최재형 선생은 김 회장과 같은 무역인이었으며, 또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 최초의 한국인 CEO랄 수 있습니다. 안내자로부터 이런 설명을 듣고서 큰 충격을 받은 김 회장은 최재형 선생이야말로 ‘21세기형 CEO’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귀국 후 몇몇 뜻 맞는 기업인들과 함께 장학회를 구성한 김 회장은 최재형 선생의 유지를 계승하는 한편 자신 역시 최 선생처럼 사회 환원에 앞장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최재형장학회는 지난해부터 고려인(러시아 한인2, 3세) 대학생들의 장학금 지원 및 최재형 선생 선양사업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 선진국의 거부들이 ‘부자 증세’를 들고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워런 버핏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며 자신과 같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프랑스 화장품업체 로레알의 최대 주주인 릴리안 베탕쿠르 등 프랑스 기업인 16명은 한 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프랑스와 유럽 경제시스템의 혜택을 많이 받아 왔다”며 “유럽의 국가부채로 인해 장래가 어두워지는 상황에서 부자들이 특별히 나서서 기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부자나 수익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이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증세’는커녕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부자감세’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한국 부자들은 조금만 세금을 올리려 들면 엄살 차원을 넘어 ‘세금폭탄’ 운운하며 당국의 합당한 조치조차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부자들이 기부나 사회 환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기부나 미담의 주인공들은 대개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인이나 일반 독지가들이 대부분입니다. 더러 재벌들이 거액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기도 하지만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3년 전에 폐지한 ‘부유세’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하며,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최근 연간 소득 50만 유로 이상의 고소득자들에게 3%의 추가세율 한시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이랬다면 부자들이 들고 일어나 ‘빨갱이 정권’ 운운하며 아마 정권을 무너뜨릴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웃에 배곯는 사람이 없게 하라’던 경주 최(崔)부자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유일한 박사 같은 분은 이제 한국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가요? 한국에는 과연 버핏이나 베탕쿠르 같은 양식 있는 부자는 없는 것인가요?
100년 전 러시아 땅에서 기업을 일궈 전 재산을 조국광복을 위해 내놓은 최재형 선생. 최재형장학회를 만든 김창송 회장은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 최재형 선생 흉상을 하나 세우는 게 ‘작은 꿈’이라고 했습니다. 김 회장의 꿈은 과연 이뤄질 것인가?
최재형장학회 김창송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