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철가방을 실은 오토바이가 달려온다. 갑자기 하얀 승용차와 마주치며 꽝하는 소리가 난다. 순간 오토바이를 몰고 오던 젊은이는 저만치 나가떨어진다. 부닥치는 소리에 놀란 행인들이 갑자기 몰려들더니 어느새 앰뷸런스가 소리를 내며 달려와서는 길에 쓰러진 젊은이를 실어간다. 영화의 첫 장면이다. 아무 영문도 모르고 무심히 보고 있던 관객들도 이 소리에 멍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일 년 전 김우수라는 젊은이이가 자장면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던 실화를 영화화 한 것이다. ‘철가방 우수씨’의 주인공 대역을 바로 최수종이 맡았다. 우연히도 고인과 최수종은 지난해 12월 ‘제3회 대한민국 휴먼대상’을 청와대에서 함께 받았다. ‘사랑 나눔과 희망 나눔상’을 이렇게 나란히 수상한 특별한 인연으로 18년 만에 스크린의 주인공으로 출연을 결심한 최수종이라고 했다.
상영관 입구에는 수많은 기자, 카메라맨들이 몰려들어 길을 막고 있었다. 시사회에 앞서 주인공과의 기자회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디어 장내 불이 켜지면서 대역들이 한 사람씩 무대에 오른다. 주인공 최수종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는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는 얼마 전에 ‘대왕의 꿈’을 촬영하다 낙마하여 오른손을 깁스하고 있었다. 보기에 너무도 안쓰러웠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처럼 오셔서 저희들을 응원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머리 숙여 인사한다. 착한 연예인, 잉꼬부부 그리고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에 이어 ‘대왕의 꿈’까지 역사물의 주인공을 도맡아온 조용한 카리스마로 호평을 받는 국민배우였다.
어느 날 성당 앞에 보자기에 싸인 채 버려진 한 애기가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그 또래 아이들에게 왕따 당함은 물론 불량배들에게 맞아 길에 쓰러진 일, 초등학교 때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교실에서 쫓겨나며 어머니를 허공에 부르는 순간 장내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고시원 1.5평 쪽방에서 새우같이 쪼그리며 추위에 떠는 모습, 70만원 월급을 받으며 중국집 자장면 배달원으로 살면서도 불쌍한 어린아이 다섯 명씩이나 자기 자식같이 돌보아 왔다. ‘감사하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한다고 했다.
고인 앞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로 엎드려 바친 털보 이외수의 시어가 목이 멘다. “김우수 선생께서 흘리신/ 사랑의 눈물로/ 언 땅이 녹고/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온 세상에/ 달고 향기로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아침이면 눈을 뜨자 늘 감사기도 한다는 최수종은 “고인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인이 살았던 고시원 책상에는 성서가 놓여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의 삶의 짙은 향이 녹아있었습니다. 그저 그의 그림자를 밟듯 연기했고 멋진 인생을 살다 가신 분이십니다.”라고 진솔한 기자와의 대화였다. 최수종 그도 또한 지난날 아버지를 잃고 거리를 방황했던 그 아픔, 버스 터미널 벤치에서 수많은 밤을 자기도 했다. 연기 아닌 아픔을 오늘도 가슴에 아련히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 가까운 시사회는 모두가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세상을 빛내준 희망 배달부 고 김우수씨는 “나한테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단 한 장의 홍보지에는 눈물비친 최수종의 얼굴이 있을 뿐 아무 말도 없다. “가마타고 가는 기쁨은 알아도 가마 메고 가는 아픔은 모른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우리는 자장면 한 그릇을 비울 때마다 땀을 흘리며 쏜살같이 달려온 젊은이들에게 나는 고마움을 전해보지 못했다. 그 한 그릇 속에는 말없는 우수씨 같은 찐한 사연이 숨어있음을 잊고 살아왔다. “여러분 이웃에 이 영화를 많이 보도록 전해주세요. 우리 스텝들은 모두가 재능기부로 시간과 열정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만약 100만 관객이 봐주시면 자장면 1004(천사) 그릇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직접 배달하여 기부를 하겠습니다.”
이 날 4시와, 8시에 언론과 VIP 두 번에 걸친 시사회는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옆자리에 앉았던 그의 아내 하희라도 남편의 주연에 감사한다며 눈이 부어 있었다. 한 인간이 이 땅에 왔다가 이토록 짧게 험하게 살다 갈수가 있을까. 가슴이 메어왔다. 그는 비록 하늘나라에 갔으나 그의 남김 흔적은 예술인들의 따뜻한 재능기부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울렸다.
사후 장기 기증도 모자라 인체조직 기증까지 서약한 천사 같은 최수종. 늦가을 찬바람이 뜨거운 가슴을 보듬어 준다. 인파속에서나마 그의 그 순고함에 조용히 머리 숙여 본다. “한 명의 따뜻한 나눔이 사회 전체에 파급되는 큰 힘을 보았다.”고 말하는 오늘의 주인공 최수종의 한 마디가 우수씨의 영혼을 타고 조용히 내 가슴에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