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씹어먹는 디지로그 시대 온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이자 문화기획자이다.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것이 1956년이니, 그의 저술활동도 어느덧 반세기의 나이테를 갖게 됐다. 저술가이자 문명비평가로서도 일가를 이룬 그의 관심 분야는 넓고도 깊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한국과 한국인> <이어령 전집> 등은 그러한 지식의 산맥이 모여서 이뤄낸 고산준령들이다.
그런 그가 고희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시대적 흐름이자 화두인 디지털을 ‘기호학의 끌’과 ‘문명학의 정’으로 다듬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그의 작업 컨셉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성세대는 주눅든 채 어려워하고, 신세대는 너무 가볍게만 대하는, ‘두 얼굴을 가진 디지털 신화’를 해체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디지털, 그거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의 출발인 인간과 그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아날로그(물질계)이다. 디지털(비물질계)은 그것을 0과 1이라는 수학적 신호로 축소하거나 교환해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다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물질계의 한계나 번거로움을 극복할 수 있고, 상품화라는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떤 디지털이라도 인간과 만나는 순간 아날로그가 된다. 디지털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예컨대 디지털카메라가 있더라도 인간이라는 아날로그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그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이어령 교수가 도전하는 일은 현실에서 너무나 극단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분리시켜 놓은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벽을 넘어서’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슬로건을 최초로 기안했던 주인공이기에 이 ‘통합의 실험’은 운명적이기까지 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우리가 선택한 슬로건은 ‘벽을 넘어서’였다. 물론 거기에는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비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1년 후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 꿈을 꾸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뒤인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붕괴됐다. 그것은 문명과 종교와 이념의 갈등과 대립과 충돌이 빚어낸 비극적 붕괴였다. 갈등과 대립과 충돌을 극복해낸 11·9 베를린 장벽 붕괴 일을 거꾸로 뒤집으면 9·11 뉴욕 테러가 된다는 발견,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경고와 교훈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통합,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디지로그’라는 상징어였다. 그러나 이 교수는 그것을 단순하게 언어의 조합을 통해 빚어낸 신조어로만 볼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도리어 한국과 한국인이야말로 디지로그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가 될 수 있는 DNA를 다량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케이크를 나눠먹는 요즘 아이들의 생일파티는 서구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런 생일파티의 한계는 초대된 사람들만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마을에 살고 있더라도 초대되지 않은 사람은 ‘방외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우리는 백일이나 돌이 되면 떡을 해서 동네 사람에게 돌리는 방식을 취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들고 가다 흰눈 쌓인 고샅길에서 이웃끼리 만날 때마다, 마을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누구네 집 아들 백일이래’라고 중얼거릴 때마다, 정성이 담긴 떡이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