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라시아 철도 기점 될 것”
이바셴초프 러시아 대사
“투르게네프, 푸슈킨, 톨스토이 등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이 프랑스나 영국의 그것보다 우리의 가슴에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만큼 정서와 감정의 동질성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로 넘어 오면서 순탄치 못했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두 나라가 우호적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야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얼마 전 부임한 글레브 이바셴초프 주한 러시아 대사의 강연이 끝난 뒤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던진 ‘클로징 리마크(Closing remark)’의 한 대목이다. 인간개발연구원 명예회장으로 조찬강연의 마무리 총평을 담당하고 있는 조 전 부총리에게 2004년 한러수교 120주년, 2005년 한소수교 15주년이라는 역사적 인연의 무게와 깊이는 남다르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바센초프 대사도 강연에서 한러관계의 강화를 강조했다.
“러시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의 ‘강력한 파트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천연자원, 과학기술, 정치안정 등 한국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조건이 러시아 내부에 충분히 성숙돼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5년 동안 시장개혁의 결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연간 성장률이 7% 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실질소득도 연평균 10∼12%씩 늘어나고 있다. 반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등은 갈수록 안정화되고 있다. 실제로 2000년 36%에 이르렀던 인플레이션이 올해는 10%로 떨어졌다. 외환보유고도 올 10월 기준으로 1천6백27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이제 안심하고 러시아에 투자해도 좋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러시아가 자국의 경제 위상을 제고하고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 몇 가지 국가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는 요즘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과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외국 기업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항공, 자동차, 석유&가스 등 전략적 핵심 분야에 대한 개방 조치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따라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생산의 현지화’이다. 예컨대 자동차 조립과 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생산성도 높아질 수 없고 소비자도 만족시킬 수 없다. 보호주의 정책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해 방침을 바꾼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러시아 내에서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조건을 만들기 위해 관련법을 정비해 관세 인하는 물론이고 부품의 반입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제한을 제한하기’와 ‘규제를 규제하기’라는 상징적이면서도 단순 명쾌한 표현을 동원해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조치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청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70%의 지지율도 그런 긍정적 변화의 연장선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시 한번 분명히 강조하거니와 러시아가 국유화와 같은 과거로의 복귀를 시도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도리어 러시아는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정을 기반으로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러시아가 되기 위해 더욱 힘쓸 것이다. ‘민주 열강 속에 서 있는 러시아’가 우리의 모토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은 러시아의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양국 간에는 각종 협정이 맺어져 있고, 10개 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특히 육상과 해상 협력을 우주 협력의 단계로까지 확대하고 있는데, 아마도 2007년이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한국과 러시아가 공존공영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 방안을 ‘유라시아 철도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는데, 그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코리아와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는 철도를 보강하고 건설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필연적으로 다가올 ‘유라시아 시대’를 열어제치는 핵심적 과제가 될 뿐만 아니라 북한도 참여를 강하게 원하는 사업이 될 것이다. 한국이 동쪽 기점이 될 수밖에 없는 유라시아 철도 사업을 활용해 동북아 단일 에너지 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일한 에너지 체제가 구축되면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사하공화국 등 동쪽에 위치한 러시아연방 소속 공화국들의 투자유치 프로젝트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의 깊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