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디지털 사회는 가능한가?
손연기 정보문화진흥원장
“여러분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직접 가서 도서를 구입하려면 정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구입하면 정가보다 10% 할인된 가격만 지불하면 된다. 증권거래소까지 직접 찾아가서 주식을 거래할 경우에는 0.5%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거래하면 그보다 5분의 1이나 적은 0.1%의 수수료만 내도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은행에 직접 가서 다른 사람에게 예금을 이체하려면 1천5백원(타 은행일 경우에는 3천원)을 수수료로 내야 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면 수수료가 단 한 푼(타 은행일 경우에는 6백원)도 들어가지 않는다.”
청중의 대다수가 아무래도 디지털 문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장년층이기 때문이었을까.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원장은 강연 서두에서 ‘당장 손에 잡히는 정보화의 이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청중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손 원장은 ‘정보화와 사회학의 소통’을 시도했다.
“남대문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하루 35만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옥션(auction.co.kr)에 하루 동안 출입하는 사람의 수는 무려 1백30만 명에 이른다. 전체 상거래 중에서 17%에 해당하는 3백14조원이 전자상거래를 통해 이뤄지고 있고, 작년 말을 기준으로 2천3백9만명이 휴대폰을 이용해 은행 결제를 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휴대폰 결제 비율은 전체 은행 거래의 29.3%에 이른다. 대표적인 인터넷 서점인 예스24의 연 매출액 9백억 원은 오프라인 대형서점의 상징인 교보문고의 연 매출액 9백50억 원을 거의 추월하기 직전이다.”
정보화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미친 영향을, 특히 그 중에서도 경제적 측면의 변화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정보화가 우리 사회의 변화에 준 영향이 어찌 여기에 머무르겠는가. 정치적 측면에서는 △노사모, 총선연대, 촛불시위 열풍 △펌질, 패러디, 리플 현상 등을, 사회적 측면에서는 △사이버대학 활성화 △재택근무와 투잡(Two job)의 일반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것은 분명 우리 손으로 이룩해낸 자랑스런 성과다. 그러나 정보화의 성과라는 빛의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득, 지역, 연령 등의 요인에 따라 발생한 ‘선도계층’과 ‘취약계층’ 사이의 정보격차 현상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컴퓨터 이용 능력 여부에 따라 15.5%의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는 한 연구 결과(노동연구원, 2002)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보격차는 시장기반 약화, 소득격차 확대, 국민통합 저해, 세대갈등 심화, 사이버 역기능 기승 등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체계적이고 범정부적인 정보격차 해소대책의 수립과 추진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손 원장은 정보격차 해소가 취약계층에 대한 단순한 시혜와 인권의 차원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야를 좁혀서 정보격차 현상을 정치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정치적 불평등 구조가 구축되면 사회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전자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기대하기도 어렵게 된다. 실제로 인터넷 활용 계층의 주축이 연령으로는 20∼30대, 직업으로는 사무직, 지역으로는 도시이다 보니까 50대 이상(3.7%), 농어민(5.15), 생산직(14.7%)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좀더 많은 사람이 고무신을 신어야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이나 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실용 위주의 정보화 교육을 실시해 인터넷 이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정책도 바로 그래서 나왔다. 2003년 19.7%에 머물러 있던 취약계층의 인터넷 이용률을 2008년 55.5%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손 원장이 밝힌 포부이다.
“무엇보다 먼저 정보화 취약지역에 정보화를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에 주력하겠다. 전국 어디서나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농어촌과 도서산간의 24만 가구에 초고속망을 설치할 계획이다. 장애인 저소득층 청소년이 직접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할 예정이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으로 하여금 재택근무를 하며 예약접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대한항공의 사례는 매우 좋은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TRS 통신중계서비스센터를 구축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어르신과 어린이가,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가 거침없이 소통하는 따뜻한 세상을 손 원장은 꿈꾼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