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솥밥 통일운동’을 제안한다
이호철(작가, 예술원 문학분과위원장)
지난 4월 8일 새벽에 만난 작가 이호철은 젊어 보였다. 1932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났으니, 어느덧 그의 나이 고희를 넘겼다. 그러나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의 내력은 그에게 늙을 틈조차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원산고 3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면서 시작됐다. 소년 인민군, 국군 포로, 실향민 청년, 부두 노동자, 국수공장 노동자, 미군부대 경비원 등의 밑바닥 인생을 거친 뒤 1955년 황순원의 추천으로 꿈에 그리던 작가로 변신했다.
분단의 아픔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겪었고, 그 아픔을 누구보다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이호철의 소설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자전적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1999년 폴란드, 2000년 일본, 2002년 독일에서 잇따라 출간됐으며, 2003년에도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동시에 번역됐다. 올 9월에는 미국에서 영어판 <남녘사람 북녘사람>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국내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동시에 7개 국어로 번역된 경우는 전무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단문제와 남북관계를 다뤘다는 것이 우리와 비슷한 사회적 체험을 겪은 그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만든 요인이 된 것 같다. 폴란드에서는 정치인들이 내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하는데, 공산주의를 경험한 그들에게 일정한 호소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 분단을 경험한 독일에서도 반향이 컸다. ‘소설에 묘사된 북한의 해방 이후 변혁 과정이 어쩌면 그렇게도 동독 상황과 비슷한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총련과 민단으로 나뉜 채 ‘또 하나의 분단’을 경험했던 일본에서도 언론의 호의적 평가가 나왔다. 특히 이호철은 멕시코 언론이 <남녘사람 북녘사람>을 대서특필했던 사실을 잊지 못한다. 거기엔 사연이 있었다.
“출판기념회가 열린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꼬르마 대학에서 강연을 했는데, 열아홉에 고향을 떠나온 뒤 휴전선에 가로막혀 부모의 생사도 모른 채 50년 동안 지냈다는 얘기를 하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들었다. ‘내 고향 원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220km이다. 멕시코시티의 꼬르마 대학에서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그제서야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의 분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호철은 <남녘사람 북녘사람> 중의 한 장면을 통해 최근 우리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나는 한 마을에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들어오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보이기 시작한 군상의 모습을 묘사했다. 서로를 ‘빨갱이’나 ‘반동’으로 매도하는 그들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결국 남한에 내려와 열심히 일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일으킨 것 아니냐? 남한 사회의 정계, 재계, 종교계 등을 좌지우지했던 그들이 북에 있었다면 모두 반동으로 몰렸을 것이다. 난장판처럼 보이더라도 그 속에서 각자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에 역동성이 있다. 세상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호철은 통일의 마당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남북 사람 사이에 정이 들고 한솥밥 먹는 사람이 형편만큼 늘어나면 통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예의 ‘한솥밥 통일론’을 설파한 것이다.
“관념적으로 이념의 통일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한솥밥 먹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그것이 통일의 시작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의선이 뚫리고 개성공단이 가동되면 남북간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결국 남북은 한솥밥을 먹게 된다. 어깨와 목에 힘주거나 잘난 척하기보다 한솥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쪽으로 공을 들이는 ‘한솥밥 통일론’을 벌여나가야 한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