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최대 고객은 종업원”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위기와 기회.
재계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접목한 경영혁신의 전도사’로 평가받고 있는 허태학 삼성석유화학(주) 사장이 조찬강연 서두에 던진 화두다. 그는 “한국 경제는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그것을 극복해온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문을 뗀 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위기 속에 기회가 내포되어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측정이 없으면 개선도 없다’는 MJ. 해리의 지적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위기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에는 외부충격 요소와 내부결함 요소가 있는데, 그것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대응한 기업은 아무리 커다란 위기가 닥쳐도 ‘고공행진’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고공행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한때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이카루스 패러독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명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크레타의 미궁에 갇혀있던 소년 이카루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여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날아올라 탈출하였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아버지의 경고도 잊은 채 너무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버리는 바람에 에게해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카루스 패러독스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관리와 혁신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관리는 나쁜 변화를 방지하는 것이고, 혁신은 좋은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 관리와 혁신의 바퀴가 균형을 맞추며 제대로 굴러갈 때 생존과 번영의 마차는 원하는 곳을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달려갈 수 있다. ‘유지관리’와 ‘지속개선’의 튼튼한 바탕 위에서 ‘혁신창조’의 흐름을 반복적으로 창출할 때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호텔신라, 에버랜드 등 주로 삼성그룹의 서비스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허태학 사장이 업종의 성격이 전혀 다른 제조업 분야인 삼성석유화학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3년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제조업 분야에 서비스 업종에서 갈고닦은 경영철학을 접목시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제조업에서도 CEO로서 관리와 혁신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게 일상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전과 똑같다. 다만 관리와 혁신을 진행하되, ‘생산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하자는 것이 전과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IT산업에 종사하는 빌 게이츠도 자신의 저서 <생각의 속도> 6장에서 ‘고객을 감동시켜라’라고 강조했거니와, 고객 중심의 패러다임을 갖게 되면 원가의 절감과 생산성 향상은 물론이고 가치의 혁신과 창조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고객’에 대한 허 사장의 새로운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객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외부 고객, 내부 고객, 협력사 고객, 지역사회 고객, 주주 고객 등 다섯 가지나 된다. 그가 삼성석유화학에 CEO로 들어온 뒤 아웃소싱이 진행되고 있는 협력사를 돌면서 협조를 구하는 동시에 신뢰를 구축하려 노력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우선시하는 고객은 회사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내부의 종업원이 만족해야 서비스 수준이 향상되며, 그것이 다시 고객의 만족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자연스럽게 회사의 이익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시 그 이익이 종업원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만 정착된다면, 그리고 직원들이 CEO를 철저히 신뢰할 수 있다면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조금의 두려움 없이 돌파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을 혁신경영의 당당한 주체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디지털 지식경영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식스 시그마 등의 경영기법을 동원해 직원들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변화에 대처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 허태학 사장이 실천하고 있는 경영철학은 다음과 같이 7가지로 정리할 수 있거니와, 성공과 혁신을 원하는 개인과 조직과 기업의 주체적 응용에 유용하게 활용되기 바란다.
첫째, CEO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둘째, 위로부터의 혁신(Top-Down)이 효과적이다. 셋째, 최우수 인력을 양성해 혁신의 최전방에 배치한다. 넷째, 경영과 식스 시그마를 일치시켜 구성원의 사고를 통일시킨다. 다섯째, 경영컨설팅 전담인력을 내부에서 양성한다. 여섯째, 종업원 전원 참여를 통해 혁신을 추진한다. 일곱째, 혁신 활성화를 지속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을 구축한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