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네덜란드에서 배우자
박영신 보나미텍스그룹 회장
“27년 전 선경 주재 사원으로 네덜란드에 건너가 단돈 2백 길더(12만원)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유럽 의류업계의 거상(巨商)이 되었다. 지금도 1년이면 4∼5개월씩 세계 각국을 누비는 국제상인으로, 장사 잘 하기로 소문난 네덜란드의 유태계 상인들마저 경쟁을 회피하는 사람, 그가 바로 박영신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이룬 직후 ‘히딩크 열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던 무렵 박영신 보나미텍스그룹 회장이 펴냈던 단행본 <히딩크를 키운 나라 네덜란드>에 소개된 필자 소개문이다. 이 책은 한때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나는 네덜란드의 개성상인>의 개정·증보판인데, 박 회장의 캐릭터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바로 ‘네덜란드’와 ‘개성상인’이다.
우선 네덜란드는 해수면보다 낮은 영토를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단결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존의 지혜’를 터득했다. 네덜란드가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바다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1982년 바세나르협약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더치 페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네덜란드는 ‘깍쟁이 나라'(조순 전 부총리의 표현)이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국익 차원에서 현지에 공군과 의료 군인을 파병했다. 그러나 국회 동의 절차를 미처 밟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영국 국기 밑에서'(under English flag) 전쟁에 참여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따라서 네덜란드는 전쟁을 주도하던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획득한 것은 물론이고 이라크 국민으로부터도 ‘가장 좋은 이미지를 가진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이익이 가장 많은 주요 사업에 초청 받는 등 이라크에서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얻고 있다.”
박 회장의 설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거니와, 네덜란드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안다. 특히 네덜란드 상인들은 정확한 계산력, 우직한 정직함, 철저한 신용으로 유명하다. 그런 네덜란드 사회에서 박 회장이 거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거기에 바로 ‘개성상인’의 메시지가 자리하고 있거니와,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불황 타개의 성공모델로 주목하기도 했던 ‘개성상인’의 경영 철학은 무차입, 한우물, 신뢰 등 세 가지로 집약된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 ‘개성상인의 후예’로 불리는 박 회장은 유럽시장에선 이미 고유명사처럼 불리고 있는 ‘빈치스타’라는 의류 브랜드를 개발했으며, 회사 내에 도제훈련 코스인 ‘빈치스타 MBA 코스’를 설치해 유럽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문적인 ‘국제상인’으로 키워내고 있다. 네덜란드팍스무역유럽(주) 대표이사, 미국팍스유럽패션(주) 회장, 빈치스타(주)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는 박 회장은 유럽공동체(EC)가 1993년 주최한 ‘유럽 국가 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 받아 주제연설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인(人), 대(大), 천(天)’이라는 세 개의 한자어를 통해 나의 경영 철학을 설명하곤 한다. 먼저 경영자는 사람(人)을 중시해야 한다. 내가 회사 내에 ‘빈치스타 MBA 코스’를 설치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서 성공하거나 행복해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큰 대(大) 자처럼 서로가 옆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시너지 효과도 일어나고, 개인과 조직이 함께 클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늘(天)의 뜻을 알아야 마침내 큰 상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이익이나 수익을 창출하기 이전에 환경이나 평화를 생각하는 상인과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이름 앞에 있는 ‘YSP’라는 영문 이니셜처럼, “항상 젊은 마음으로, 무한하게 하늘로 비상하면서도, 평화의 마음을 잃지 않겠다”(Y=Always young mind, S=sky no limit, P=peace)고 말하는 박영신 회장. 그는 네덜란드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은 동북아의 허브가 돼야 비상할 수 있다. 동북아 허브의 성공 여부는 세계 최대의 공장인 중국과 세계 최대의 R&D센터인 일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는데, 이를 위해선 ‘Sea, Land, Sun(바다, 땅, 하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다시 말해 1만 척의 바지선·컨테이너·유조선·유람선 확보를 통한 해상권 장악, 최대 시속의 전동차와 최고로 쾌적한 화물트럭 10만 대 확보를 통한 지상권 장악, 승객과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항공기 1천대 확보를 통한 항공권 장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장악하고 수행할 수 있는 분명한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국제상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필수적인 것이 있다. 성경에는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돼야 한다'(마태복음 20장 26∼27절)는 구절이 있다. 동북아 허브의 진정하고 근본적인 지도력은 ‘섬김’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지환 기자 ssal@ngo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