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소 이치로(한국도요타자동차 사장)
“환경 없는 자동차? 미래는 없다!”
세계 24개 나라의 42개 공장에서 5만 명의 종업원이 자동차를 생산해 1백60개 나라에 판매하는 기업, 작년 순이익이 무려 1조엔에 이르는 순수 일본 자본의 대표적 기업, 포드를 제치고 세계 2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한 기업,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해 친환경차 시장을 석권한 기업….
도요타자동차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를 창조한 마술사”로 불리는 도요타 에이지 전 회장이 ‘타임’지에 의해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아시아 20인’으로 선정된 것과 지난 40년 동안 도요타 현장에서 단 한 건의 노사분규도 없었다는 ‘무분규 신화’도 여기에 보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요타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오기소 이치로 한국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지난 8월 19일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의 주제를 ‘도요타 웨이’로 제시했거니와, 우리는 여기서 일단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웨이(Way)는 ‘길’이 아니라 ‘방식’의 의미로 쓰인다. 이름하여 ‘도요타 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오기소 사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도요타도 처음에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존중했다. 외국인 주주가 증가하면서 그들의 이해를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필요했다. 그러나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사실은 미국과 유럽 중심의 표준과 척도에 불과하다는 것도 냉정하게 인식했다. 구미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미래는 없다고 판단한 경영진은 전 세계에 산재한 5만명의 종업원이 공유할 수 있는 내부의 행동규범과 철학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총 14쪽의 얇은 책자인 ‘도요타 방식 2001’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도요타 방식은 ‘지혜와 개선’ 그리고 ‘인간성 존중’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갖추고 있다. 우선 ‘지혜와 개선’의 기둥에는 세 가지 서까래가 걸려 있는데, 챌린지(꿈의 실현을 향하여 비전을 내걸고, 용기와 창조력을 가지고 도전한다), 개선(늘 진화하고 혁신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개선에 정진한다), 현지현물(직접 현지에서 현물을 확인하는 자세로 본질을 끝까지 확인한다)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성 존중’의 기둥에는 존중(다른 이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상호 이해에 힘쓰며 서로의 책임을 다한다)과 팀워크(인재를 육성하고 각자의 힘을 결집한다)라는 두 개의 서까래가 있다.
“열거된 내용만 보면 별 것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렇게 만만치 않은데, 현지현물(現地現物)의 사례만 보자. 해외 공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자동차 표면을 처리하는 도장(塗裝)의 품질 결과가 계속 좋지 않게 나왔다. 도료 배합을 점검하는 등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어느 날 일본 관리자가 현장에 내려가 조사를 하던 중 작은 결함을 발견했다. 노동자들이 자동차 표면을 닦는 천을 먼지가 있는 바닥에 방치했다가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을 놓아두는 공간을 개선함으로써 문제는 해결됐다. 그 관리자가 사무실에 앉아서 보고만 들었다면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도요타 방식의 웨이(Way)는 ‘정신’의 의미로도 쓰인다. 물론 정신은 ‘비전’의 다른 이름이다. 실제로 도요타는 2002년 ‘2010년 글로벌 비전’을 발표했는데, 그것의 핵심은 패러다임 체인지의 제창이었다. 급변하는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한 셈이었다. 이와 관련 오기소 사장은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냉전이 붕괴되고 공산권이 시장경제에 편입되면서 시장규모가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과 재생?순환형 사회가 도래하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없으면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각에선 인도인과 중국인의 절반만 자동차를 소유해도 대기오염으로 인해 전 지구적 차원의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있다. 과격한 환경운동가들은 중국에 자동차를 팔지 말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에 자동차를 팔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연료전지 등 친환경 에너지로 움직이는 자동차였다. 1997년 12월 선보인 프리우스는 포드에서 현대적 의미의 자동차를 최초로 생산한 지 꼭 90년만에 생산됐다고 한다. ‘도요타 방식’이 또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주목되는 운명적 이유이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