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남북통일 지지하는 이유”
이 빈 주한 중국대사
“한미동맹을 강화해 대(對)중국, 대러시아, 대북한 외교의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유럽의 EU처럼 상생하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조세형 전 주일대사)
한미동맹 강화만이 살 수 있는 길인가, 동북아 연대의 새 길을 개척할 것인가? 지난 두 번의 조찬강연에서 나왔던 진단과 처방은 양극을 달린다. 그렇다면 동북아의 일원인 중국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외교가에서 ’25년 동안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온 젊은 외교관’으로 통하는 이빈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7월 15일 오전 7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룸에서 열린 조찬강연에서 그 일단을 털어놓았다.
‘중국의 평화부상과 중한관계’를 주제로 강연한 이빈 대사는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 추진 이후 중국이 이뤄낸 눈부신 경제발전의 성과를 열거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실제로 중국 경제는 연평균 성장률 9.4%를 기록하면서 25년 만에 경제규모 세계 6위라는 경이적인 신화를 달성했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구매력을 감안하면 중국의 경제 규모는 미국에 이어 실질적으로 2위를 차지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지난 25년 동안 중국의 교역량은 2백6억 달러에서 8천5백12억 달러로, 전화 보유 가구 수는 1백92만 가구에서 1억6천만 가구로 폭증한 반면 2억5천만 명에 이르던 농민 수는 3천만 명으로 줄었고, 1인당 GNP는 여전히 1천 달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인당 GNP를 기준으로 하면 중국의 경제 수준은 100위 권 밖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이빈 대사의 해석이 독특했다.
“중국에는 많은 난제가 있는데, 그것은 이중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것을 곱하기(×)와 나누기(÷)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싶다. 예컨대 어떤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것이 아무리 작아도 13억을 곱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큰 규모의 문제가 된다. 동시에 아무리 큰 문제라고 해도 13억으로 나누면(÷) 그것은 매우 작은 규모의 문제가 된다.”
기쁨과 행복은 곱셈을 하고 슬픔과 불행은 나눗셈을 하자는, 이빈 대사가 내놓은 이 ‘역설의 지혜’는 중국의 외교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로 상징되는 새 정부의 외교방침인 “이웃과 함께 화목·평화·부강하자”와 관련해 이 대사는 이런 예를 들었다.
“중국은 2천년 전 만리장성을 쌓았고, 1천년 전 실크로드를 뚫었으며, 6백년 전 인도양에 진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사건을 ‘공격’이나 ‘침략’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행위였다. 중국이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을 개척한 것도, 정화(鄭和)가 대선단(大船團)을 이끌고 바스코 다 가마보다 1세기 앞서 인도양에 진출한 것도 ‘침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역’을 위한 행위였다.”
이빈 대사는 “1997년 아시아 국가들이 IMF 사태로 휘청거릴 때 중국은 예상을 깨고 인민화폐 평가절하를 거부했다”면서 “만약 중국이 당시 소신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아시아 경제는 더욱 처참한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를 선택과 대결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냉전시대가 완전히 끝난 상황에서 도리어 한반도 주변국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통일을 완전히 지지한다. 통일의 방식도 중요하거니와, 전쟁이나 동란의 방식은 절대 반대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평화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중국의 국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과거 역사를 봐도 한반도가 통일되어 있을 때 중국은 안정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반면에 한반도가 분열되어 있거나 내란에 싸여 있을 때 중국은 피해나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다음주 조찬강연은 인간개발연구원이 주최하고 시민의신문이 후원하는 ‘2004 밀레니엄 경영자 섬머포럼'(7월 21일∼24일, 제도 샤인빌리조트) 일정 관계로 쉰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