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일제 식민지 시대가 나았다고?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 그는 이른바 ‘탈북자’ 중의 한 명이다. 그런데 몇 가지 점에서 그는 다른 많은 탈북자와 완전히 격(格)을 달리한다. 첫째, 지난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직접 40분 동안 면담을 했다. 둘째, 반공 뮤지컬 ‘요덕 스토리’에 등장하는 소위 ‘요덕 정치범 수용소’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본인은 9세부터 10년 동안 수감됐다고 증언). 셋째, 현재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주관적 체험과 주장’으로 일관된 그의 강연은 한 ‘특별한 탈북자’의 멘탈리티를 읽어볼 수 있는 유익한 자료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을 탈출해서 자유 한국의 품에 안긴 지 13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직 여전히 적응이 덜 됐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탈북 당시만 해도 한국의 안보에 안심할 수 있었지만 1997년 이후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에 양보 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느끼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유엔에서 진행된 총 4회의 대북 인권 결의에 모두 불참하고 북한의 마약 밀매에도 침묵했는데, 이제 뭘 더 양보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강 기자는 ‘자유 한국’의 대통령을 질타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 사회에 아직도 적응이 덜 됐다는 고백과 달리, 그는 자유롭게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림으로써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적응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이어서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의 체험도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한 달 동안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하버드대, 예일대, 버클리대 등 10개 대학에서 초청 순회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특히 예일대는 학장과 학생 2백여 명이 참석해 강연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 대학생들의 질문 중에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반미와 친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그들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미국 군인 4만여 명이 희생당했는데도 한국은 대가는커녕 은혜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나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강 기자는 한국이 미국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반대’해선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이 미국과 붙어서 잘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 대북 전략의 방향을 ‘북핵’에서 ‘인권’ 문제로 전환할 것을 충고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압박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리어 그런 방식은 북한 내부의 반미항전 분위기만 공고히 하는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실제로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대북 전략의 근본이라면, 인권 문제를 고리로 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확신한다. 우선 수용소, 탈북자 등의 인권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 북한이 방어할 방법이 없다. 아울러 미국에 대한 북한 인민의 인식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나의 충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강 기자는 “미국이 인권 문제에 이어 마약과 위폐 문제를 거론한 것도 기발했다”고 평가했다. 김정일 정권의 자금 동원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어서 그는 “북한 인권에 무심한 한국 내의 일부 세력”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각을 세웠다.
“사형제 폐지까지 주장하는 한국 사람들이 정작 북한의 인권에는 무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엔에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 편지까지 보냈다고 하는데, 왜 북한 인권에는 침묵하는지 모르겠다. 1997년 민주당 총재 시절 김 전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해서 직접 당선 운동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도리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며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북한 주민과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막은 채 진행되고 있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개발은 사기(詐欺)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 문제에 너무 집착한 탓이었을까. 강연 도중 강 기자는 역사에 대한 매우 위험한 무지와 오류를 드러내기도 했다. 식량과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해 북한의 상황을 비판하던 중 “차라리 일제 식민지 시대가 나았다”고 발언한 것이다. 북한의 인권을 극구 강조하면서도 정작 식량 지원에는 반대하는 모습도 모순으로 비쳐지긴 마찬가지였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
◎ 강철환 기자의 이력서
▲ 1968년 평양출생(북송 재일교포 3세)
▲ 1977년부터 10년간 북한 요덕 정치범수용소 수감
▲ 1992년 탈북
▲ 한양대 무역학과 졸업
▲ 한국전력공사 근무
▲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본부 공동대표
저서: 대왕의 제전, 수용소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