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계 학계를 망라,사통발달 안통하는 곳이 없어 네트워킹의 대부라 불리는 장만기(68)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주도 거르지 않고 30년간 사계의 최고 전문가를 초청, 지금까지 약1,400회의 조찬강연회를 열어온 그의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를 제공한 것은 편지였다. 1970년대 한국의 발전된 실상을 세계에 알려달라는 부탁을 담아 세계 유수의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며 그는 평범한 신참 교수에서 사업가로 변신했었다. 두번째 터닝포인트의 편지는 사업가에서 오늘날의 교육가로 변신하게 한 것. 세계적인 리더십컨설턴트이자 동기부여전문가 폴 마이어에게 보낸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사업가로서의 몰락을 딛고 일어서 방향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 후회도 없고, 회한도 없이 오로지 목표와 비전을 향해 전진만 해왔다는 ‘영원한 청년’ 장만기회장의 성공비결을 들어보자.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장만기회장의 별명은 오뚝이다. 현재 고희의 나이지만 과거의 추억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늘 미래의 할 일을 꿈꾸기에 그의 머릿속은 비전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실수에 자책하고, 손해에 대해 땅을 치며 가슴아파하기보다는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하고 툭툭 일어선다. 남의 허물을 탓하고, 과거에 얽매이면 나만 손해라고 생각해서다.
그라고 좌절이 없었을 것인가. 1970년대 명지대 교수를 그만두고 뛰어든 것이 세계 언론사에 한국의 발전실상을 알리는 국가홍보를 담당하던 일. 하지만 그가 수개월간 외국출장을 마치고 돌아오자 직원들이 공금을 횡령, 모두 잠적하고 만 것. 게다가 박정희정권이 유신헌법을 발표하며 미국정부로부터 불신임을 얻는 바람에 국가홍보 프로젝트는 무산, 그간 벌여온 국가 홍보사업을 아쉽게 접어야 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바로 인간개발연구원이었다.
“젊었을 때 꿈은 세계적 수출무역 대가가 되는 것이었지요. 내가 오늘날 이런 일을 할 것은 생각 못했지요. 하지만 덕분에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매진하게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만일 내가 세상을 원망하고,남을 탓했다면 아마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긴 힘들었을 겁니다. 위기가 기회와 동의어란게 내 인생을 봐도 알 수 있지요.”
장회장의 성공비결은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늘 생생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 다음에 목표를 향해 전진하면 자신의 실패에 대해, 자신을 몰락으로 이끈 주위 환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폴 마이어(폴 마이어는 자기 개발의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인재 개발에 헌신하고 있는 인간 교육 사업의 선구자). 그의 어록을 부적처럼 양복 속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가슴에 새긴단다.
늘 앞을 향한 전진만 있다는 그는 심지어 택시를 잡을 때도 정거장에 멈추어 서서 기다리는 법이 없다. 뒤로 물러서는 것 뿐 아니라 정지 자체가 후퇴라는 평소의 생각이 반영되서다. ‘포기도 용기’라는 세간의 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선시 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 정답이 나오게 돼있습니다. 비교우위에 서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정하면 포기라기보다는 새로운 선택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선택을 향해 또 전력투구하는 것이고요.”
나이란 오로지 물리적 숫자에 불과한 장만기회장의 꿈은 그래서 늘 끝이 없고, 빛바랠 줄 모른다.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저는 제 삶에 만족스럽습니다. 성공이 결과라고 생각하면 늘 자신의 삶에 불만족스럽지요. 하지만 난 진정한 성공은 가치있는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개발연구원이 한번의 결강도 하지 않고,꾸준히 30년동안 조찬모임을 열어왔다는 것도 성공이라 할 수 있겠지요.”
장회장은 “밤이 캄캄해도 아침이 올 것을 믿고, 그 혜택을 믿는 사람에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어느 하나 희생할 수 없는 선물”이라고 강조한다. 가난한 농가출신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비교적 순탄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과정론 덕분이란 설명이다.
“고통과 역경이 터널이 아니라 출구가 막힌 동굴이라 생각하면 인생이 고해(苦海)지요. 하지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위기는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밝은 얼굴로 즐겁게 살 수 있게 되더군요.”
관계적 존재가 되라
장만기회장이 늘 가슴에 새기는 말은 ‘인간은 관계적 존재’란 것이다. 천지인과 자신의 관계설정에 있어서 바른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천은 창조주, 지는 자연의 질서, 인은 사람과의 관계를 뜻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아래 온 세상에 오직 나혼자 존재한다는 뜻이지요. 자칫 오만불손한 말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알고보면 바로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란 뜻이지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을,이웃을 사랑하란 것으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지요. 자신이 세상에 나온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면 결코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나라 지성계 네트워킹의 대부가 된 것도 이같은 관계이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개인의 관계뿐 아니라 국제적 역학관계에서도 우리나라가 일본 중국 러시아등 주변강대국과 우호선린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부에선 중국이 강해진다고 위기론을 피력하지만, 난 중국이 부강해지는 것이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제에 선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봅니다.”
장회장을 만난 사람이 놀라는 것중 하나는 상대방의 이름을 암기하는 비상한 능력이다. 예전보다 총기가 흐려졌다고 겸손해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난 대부분의 사람 이름을 기억하고,다음에 인사할 때 정확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준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절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요. 하루의 계획을 적는 플래너에 그날 만날 사람 이름을 적고, 만나고 나서는 그 사람 이름을 다시 한번 반복하며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재차 연상해봅니다. 그래서 내게 이름은 글자 석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추억과 토론을 압축하는 암호이지요. 이름 석자 마다 즐거운 이야기와 열띤 토론이 서려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이름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장만기회장의 관계이론이 단지 우호적 친구관계를 벗어나 우리 사회에 우호적으로 작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 이종기업간의 결합만남을 통해 웅진그룹 윤석금회장과 라미화장품 유상옥회장을 링크시켜 줌으로써 오늘날 코리아나 화장품 그룹이 탄생케 하는 산파의 역할을 맡았다.
“돈은 벌지 못했지만 저는 사람을 벌었고, 그것이 목표였기에 내 인생에 만족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어하게 마련이고,그렇지 못한 사람은 또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요. 바로 그런 공감과 교유의 장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킹보다 더 재미있는게 바로 킹메이커의 역할이랍니다.”
조찬모임의 추억 한토막. 늘 모임에는 촌철살인의 논객이 있게 마련. 우르과이 라운드 분쟁이 한창 심했던 당시, 그레그대사를 초빙해 강연회를 열고 있었다. 당연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슈는 쌀시장 개방압력. 자칫 분위기가 경색되려 할 때 이한빈 전 부총리가 번쩍 손을 들더니 “우리 나라 의사결정권자의 90%가 농촌출신”이라며 참가자들에게 농촌출신은 손을 들어보라는 제의를 한 것.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적절한 조치를 촉구하며 조찬모임은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단다. 이외에 정치적 연금상태에 놓여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발언의 자리’를 마련해 준 것 등등 인간개발연구원의 일화는 무궁무진하다.
지금도 숨어있는 진흙속 진주 인사를 발굴하기 위해 신문의 동정란을 샅샅이 뒤져읽는다는 장회장이 스스로에게 자부심으로 삼는 것은 세상의 트렌드를 두루 앞서 읽을 수 있다는 점.
“각계 최고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라도 책을 읽고 토론준비를 해야 하지요. 그러다보니 저절로 각 분야에 두루 정통한 사람이 되더군요.”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장회장의 꿈과 계획을 물어봤다. 과거의 이야기를 언급할 때 간략하게 넘어가던 대답이 미래의 계획에 이르자 아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시대를 열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중국어 일어를 배워 둬야 하고, 인간개발연구원의 지방 네트워크, 세계분회 네트워크 확장등… 꿈과 도전해야 할 과제를 이야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는 장회장을 보며 꿈을 가진 ‘영원한 청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 장만기 회장 프로필
‘세상을 바꾸는건 사람이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건 교육이다.’
장만기 회장은 자본이나 기술이 없는 우리나라가 살 길은 우수한 인력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인간개발에 대한 관심을 갖고 1975년 인간개발연구원을 창설하였다.
국가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기업 경영자와 지도자에게 경영리더십 개발과 인간존중의 건전한 기업문화 풍토 조성을 위해 우리나라 조찬세미나의 ‘원조’인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를 개설하여 30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1,392회(3월10일 현재)를 이어왔고 국내 최고최다의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초빙 강사의 명성도 수많은 세미나 중에서 단연 최고다. 이젠 ‘인간개발연구원의 강사로 초청되지 않으면 유명인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상도 높아졌다.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인간개발. 특히 국가와 지역 사회를 선도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전국 지방자치 단체의 공직자와 각 단체의 지도자,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지방자치아카데미를 시작하였다.
1995년 전남 장성을 위시로 하여 서울 중구, 울산 동구청, 광주 광산구를 포함한 경기, 전남, 충북 등 65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2500회 이상을 정기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저서에는 ‘인간경영학’ 및 ‘기업과 인간’, ‘한국적 노사관계’, ‘간부의 자기혁명’, 역서로는 ‘간부와 자기관리’, ‘경영지침’, ‘활력경영’, ‘1분간의 경영’, ‘폴마이어와 베풂의 기술’이 있다.
김성회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