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위급한 상황에 도와주라는 음성을 주시고, 교인의 걱정 어린 얼굴 모습을 보여 주시며. 주님은 나에게 중보 기도자의 길을 걷기를 권 하셨다. 그 후 나의 어설픈 중보 기도자의 행로가 시작 되었다.
주님께서 어떤 여학생의 다급한 상황을 보여 주시며 기도 하기를 권했는데. 나는 그 아이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몇분간 버티다가… 기도에 들어 갔다. 한 삼심분쯤 기도를 하니 그 아이를 둘러싼 검은 무리가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 다급한 상황을 알려 주셨는데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버티고… 방언을 주셨는데, 그 방언이 강해서 싫다고 안 하고 싶다고 하니 주님께서 아무 말 없이 그 날로 방언을 거두어 가셨다.
시간이 지난 후 방언기도의 중요성을 뒤늦게 알고 회개하고 다시 달라고 하니 ‘어린아이처럼’ 주님께선 다시 부드러운 불어 같은 방언을 주셨다. 또, 어떤 분을 위해 삼일 금식 기도를 하라고 하셨는데, 나의 판단에 아닌 것 같아 안 하고 있었다. 주님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말 없이 옆에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래도, 주님 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하고 버티다가… 주님께서 한번 더 옆에서 기다리고 계신 모습을 보고서야 회개하고 기도에 들어 갔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보니, 그 분은 지금 하나님의 단체를 휼륭히 이끌어 가고 계시는데, 이라크 전쟁을 막기 위해 중보 기도 하던 중, 전쟁 나기 3일전에 에레미아 말씀4장 19절 말씀을 주시며 전쟁이 난다고 알려 주셨다. 그 후 중보기도의 보람도 없이 전쟁이 났다. 오랜 시간 기도 했기에 더욱 허탈한 마음에 나는 중보 기도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한 동안 편하게 잠을 자며 편하게 지냈는데, “무너진 곳을 세울 사람이 필요 한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말씀에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면서 회개와 함께 다시 중보 기도자 자리로 복귀하였다.
이런 어설픈 중보기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랑으로 품어주셨다. 중보기도할 사항이 있으면 깨우시는데, 처음엔 구형 전화벨 소리로 깨우셨다. 나는 늘 바쁜 상황을 지냈기에 전화를 싫어 한다. 주님은 그것도 감지하셔서 전화벨 소리에서 삐 소리로 짧게 나는 것으로 바꾸어 주시고, 어느 날은, 하늘의 음악을 들려 주셨는데, 나의 어설픈 판단으로 나의 침실에 어떤 음향시설이 있는가 찿기도 하고 그 악기가 지상의 어떤 것인가 생각하기도 하고, 한참 후에야 그것이 하늘의 음악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상의 예술수준과 하나님의 예술의 차이는 나노그램과 톤과의 차이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주님은 마음속의 생각, 결정 까지 읽으시기에, 어떤 때는 “그것이 아니다” 음성으로 알려 주시고, 잘못된 선택을 할까, 빨간 신호등을 보여 주시고, 위험한 길로 갈까 뜨거운 불새로 위험 함을 알려 주시기도 한다.
나 같은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하늘의 음성,음악,조차도 나에겐 크게 들리는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안 들리고, 심지어 남편은 나에게 정신과 에 가보자고 권하기도 하였다. 교회 안에서도 영적인 초월된 초자연적인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많으니 이런 경험을 나누기는 쉽지 않아서 대부분 혼자 간직하고, 노트에 적어 놓기만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상황 이었는데, 주님께서 간증을 권하시고, 글로 쓰기까지 권하신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느끼는 것은 좀 더 일찍 하나님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알아 보았더라면, 나의 판단을 빨리 내려 놓았더라면, 싸인을 주실 때 즉각 순종 했어야 했는데, 시간을 아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주님께서는 특히 한국의 중보 기도자를 주목하고 계신다고 하신다. 앞으로 많은 기도자를 부르실 것이고, 초자연적인 경험을 더 부어 주실 것 같다.
기도 노트에 적힌 글이 마음 속에 깊이 들어 온다.
“중보 기도는 의무가 아닌 하나님의 심정에서 사랑으로 기꺼이 참여 하여야 한다. 기꺼이 지원 하고 순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