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경제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의 어려움은 1997년 IMF 당시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 지나친 우려라고 웃어 넘길 수 없는,일리 있는 면이 있어 보인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97년,겉으로는 그렇게도 잘 나가는 듯이 보이던 우리 경제가 왜 IMF를 맞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된 결과였다. 그러나 한마디로 그 원인을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나는 그 이유를,우리 경제의 거의 모든 경제 주체가 절제(節制)를 잃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70년대 이후 정부의 정책은 오랫동안 경제 원리를 무시한 채 너무나 방만했다. 물가는 거의 하이퍼 인플레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본적인 대책은 없었다. 기업은 절제 없는 투자를 했고 금융기관은 절제 없는 대출을 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세계화의 구호를 외치면서 너무 방만하게 금융 개방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상승 작용을 함으로써 IMF를 불러왔다.
우리는 IMF를 너무 쉽게 탈출했다. 대체로 IMF의 프로그램에 따라 정책을 집행함으로써 한국 경제는 IMF가 바라는 대로 국제 경제에 편입됐다. 공적자금이 투입됨으로써 금융의 부실은 줄어들었고,기업도 워크아웃과 해외 매각을 통해 부채 비율이 낮아졌다. 한국이 IMF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확인하고 국제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의 신용 등급을 올렸다.
당시의 정부는 IMF를 졸업했다고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경기를 부양함으로써 건설경기를 활성화하고 소비 지출을 부추겼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이 모든 경제 주체는 또 절제를 잃게 됐다. 금융기관은 기업에 대한 대출보다는 개인에 대한 소비금융에 주력함으로써 이윤을 올렸다. 개인은 소비에 열중하고 해외 여행을 즐겼다. 경기가 과열 기미를 보이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침체로 연결될 것이 확실시되었다. IMF를 몰고 온 절제의 상실이 다시 재연되기 시작했다. 장·단기 외채가 1300억달러에 달하고 이 중 35% 정도가 단기 외채라 한다.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식어가면서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경제 전반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금년 성장률은 4%에도 미달할 것 같고,생산성을 앞지르는 임금 때문에 물가는 4%대를 능가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정부는 경기 부양 정책을 써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경기 하강의 원인은 지난날의 과열에 있는 것이지 지금의 유동성이나 소비수요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 경기 부양을 한다면 그 효과는 오히려 스태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것으로 나는 본다.
무엇을 하면 되는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나 모든 경제 주체가 절제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 경제는 IMF 5년 동안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은행,기업,토지,건물을 팔아 얻은 소강 상태를 무참히 허비하고 말았다. 들떠 있는 국민의 심리를 진정시키지 않고 재정이나 금융의 수단을 써도 효과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고용허가제 같은 것을 도입하지 말고 기업이 별 무리 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감독해야 한다. 대신 분식회계를 눈감아 주지 말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불법적인 노조활동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로또복권 같은 사행심을 이용하여 민간으로부터 ?b>선?아닌 ?b>선鳧?징수하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외국에서 이런 정책을 쓴다고 우리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다.
길게 생각해 보자. 나는 21?b>선穗?글로벌화의 시대에 앞서 우선 지역화의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우리의 국가 운영 비전도 이 추세에 맞추어야 할 것으로 본다. 21?b>선藪〉?물론 내셔널리즘은 계속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항상 자기 나라나 민족만을 염두에 두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 유연한 자세로 북핵 문제를 해소하도록 노력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고 동아시아 전체를 묶는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지역협력체를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 경제 중에서 가장 활기 있는 지역은,지금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역시 아사아일 것이다. 이 활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우리의 장래가 달려 있을 것이다.
조순(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