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절제·느림의 미학…”시조창 멋에 푹 빠졌어요”
[조선일보 김용운 기자]문용린(서울대교수·전 교육부장관) 장만기(인간개발연구원 이사장) 강석진(서양화가·CEO컨설팅그룹 회장) 김혜경(도서출판 푸른숲 대표) 정근원(조선대 겸임교수) 김혜경(KBS 시청자센터장)씨. 각계 명사 6인이 가사·가곡·시조의 정가(正歌) 인간문화재의 발표무대에 올라 시조창 한 곡을 함께 발표한다.
이들은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 가곡 예능보유자 겸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이수자인 한자이씨가 8일 오후 3시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공연홀에서 갖는 제5회 정가발표회서 한씨에게서 배운 시조창 ‘청산은 어찌하여’를 발표한다.
이날 공연은 한자이씨와 스승 김경배(중요무형문화재 가곡 보유자)씨가 ‘나무도 바히 돌도…’ ‘월정명 월정명커늘…’ ‘십이난간’ 등 가곡·시조·시창을 발표하는 무대다. 한씨한테서 5~6년 이상 정가를 배운 오희필(전 대전대 총장) 신웅순(중부대 교수)씨 등 프로급 창자(唱者)도 출연한다. 서울의 ‘아마추어’ 명사 6인은 그 틈새서 한 순서를 맡았다.
“한 모임 때 피아니스트 임동창씨가 ‘왜 모였다 하면 노래방에만 가느냐, 한국음악 중에는 선비들이 즐기던 정가라는 게 있는데, 어디 가서 시조창 한 소절 하는 게 얼마나 운치 있고 좋으냐’고 해요. 그 길로 한자이 선생님을 소개받아 지난 7월부터 매주 한 차례 회원 집, 인사동 찻집에 모여 시조를 배웠습니다.”
문용린씨는 “정가에는 조상들의 정한(情恨)이 배어 있고 삶의 지혜가 묻어 있다”며 “정가에 심취하는 것은 조상의 감성과 지혜에 우리의 탯줄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긋지 아니하는고/우리도 그치지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하리라’.
‘청산은 어찌하여’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연시조 ‘도산육곡지이(陶山六曲之二)’ 중 다섯 번째 시조다. 변함없는 의지로 학문과 인격 수양에 힘쓰라고 독려하는 내용. 문용린씨는 “2시간여 차를 운전하면서 시조창을 반복하는데도 싫증나지 않는다”고 했다. “노래에 끄는 맛이 있다”는 것. 다만 “배워보니 선비가 글을 익히듯 꾸준히 파고들어야겠더라”며 “좀 더 많은 이들이 전통소리를 접하고 우리 것을 찾는 분위기가 살아나면 좋겠다”고 했다. 문씨는 발표날 입으려고 한복도 한 벌 새로 지었다.
대전~서울을 기차로 오가며 명사 제자들을 가르친 한자이씨는 “가사·가곡·시조창의 묘미는 절제하는 데 있다”고 했다. 감정을 밖으로 다 쏟아붓지 않고 갈무리하면서 느릿하니 여유롭게 풀어낸다는 것. 요즘 유행하는 느림의 미학에 딱 맞아떨어지는 음악이라고 했다.
도서출판 푸른숲 대표 김혜경씨는 “서양음악만 배운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나 싶고, 아직 이 분야가 동네잔치로 머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시끄러운 노래방 반주 없이 가만히 정좌하고, 자연의 소리를 닮은 정가를 한 곡 부르는 것이 앞으로 풍류남의 필요조건이 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김용운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