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금융허브 되려면 법률·외환 모두 개방해야”
오버린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 ‘한미관계와 경제협력방안’ 연설
노무현정부가 내놓은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의 상은 무엇인가.
노무현정부는 출범 초부터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건설’과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두가지 경제목표에 대해 현실성이 있다고 박수치는 경제전문가를 쉽게 만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구호 아니냐’고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이 많다.
윌리엄 오버린(William C. Oberlin)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은 4일 아침 7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회장 장만기) 포럼에서 ‘동북아 금융허브로서 한국정부의 역할’에 대해 역설했다. 그가 말한 행간의 의미를 잘 살펴보면, 이제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경제중심국가의 상을 ‘금융허브’로 삼고 있는지, 아니면 ‘물류거점’으로 삼고 있는지 명확히 밝힐 때라고 충고하는 듯했다.
오버린 회장은 이 포럼에서 “인천공항 등 한국의 물류인프라는 좋으나, 지금 한국은 하나의 섬처럼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며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생각해볼 때, 한국 자체가 특별지구(경제특구)로 지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몇 개 도시라도 특구로 지정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상공회의소(AMCHAM) 입장에서 보면, 한국기업이나 한국에 와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이나 모두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국의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하고 “한국이 동북아경제의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유연성과 세금비율, 국가이미지, 외국어실력배양, 법률서비스, 외환규제 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북아 금융허브 되려면, 외환규제 없애고 법률시장도 개방해야”
특히 그는 “한국이 동북아 허브가 되려면 외환규제 하나라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폐쇄된 한국의 법률시장을 개방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버린 회장은 “미국은 지나치게 법률시장이 개방된 반면 한국은 너무 폐쇄적이다, 따라서 한국도 글로벌 기준에 맞는 법률서비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동북아 금융의 허브가 된다면 돌아올 혜택은 매우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버린 회장은 한국 노사관계에 대해 “미국은 100년의 노사관계를 갖고 있지만 한국은 몇 년 안된 노사관계를 갖고 있다”며 “노동유연성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적 특성’에 맞게 성공적인 패러다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잘 해결될 것이다”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을 ‘비즈니스맨’이라고 강조한 뒤 “기업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한국이 홍콩이나 싱가포르, 상해와 비교할 때 과세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며 “뭐든 예측가능성이 있는 사회로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 것도 현재 한국이 당면한 주요 역할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야만의 나라?
끝으로 그는 미 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노무현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올바르나 이제는 그 정책을 실행할 단계에 왔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일, 미국 클리브랜드에 사는 소시민이 지역신문을 받아보면서 매일 노사분규가 나는 사진과 글만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나처럼 한국에 오래 살았던 사람은 한국사회가 매우 역동적이고 좋은 사회라고 알고 있지만, 그들은 나처럼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기 힘들 것이다. 시간은 매우 빠르게 변한다. 한국에게 기회가 오랫동안 열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 해내리라 믿는다.”
이 자리에 모인 청중 중 한 정치학자는 “역시 미국 사람과 프랑스 사람은 매우 다르다”며 “말로는 오버린 회장이 경제인이라고 하지만 실제 얘기는 외교적인 멘트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캉드쉬가 IMF 당시 한국에 와서 ‘돈 많다고 하더니 한푼도 없고, 한국공무원들이 이렇게 무식할지 몰랐고, 한국정보는 완전 엉터리다’라고 말해 충격 받고 IMF 극복을 위해 나섰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잘 될 것이라는 외교적 언사만 한다”며 “미국 피듀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더니 그 학교는 정치학을 잘 가르치는 모양”이라고 비틀어 비판해 좌중의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도 “오버린 회장의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가 말한 의미를 잘 보면 우리에게 별로 후한 점수를 준 게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조 전 부총리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가 과연 얼마나 현실성 있는 전략인지 제대로 된 방향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국가 이미지 제고에 있어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을 무조건 나가라 해서 그들이 농성하고 자살하게 만들면, 그건 몇십억불 수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국에 나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며 “문화의 시대 21세기에 ‘한국은 야만의 나라’라고 찍히지 말자”고 강조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도 “오버린 회장의 지적처럼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려면 조세와 법률시장, 외환, 모두 개방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과연 4500만 인구가 사는 한국이 인구 1000만도 안 되는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들과 경쟁하기 위해 현재 구축된 제조업 등의 인프라를 다 포기하고 ‘동북아경제중심국가=동북아금융허브’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등식에 동의할 사람을 만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만일 노무현 정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과연 올바른 경제목표인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덧붙여 김 교수는 “만일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겠다는 발상을 갖고 있다면 제2의 IMF를 부를지 모른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