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의 CEO 노트] 핵심 인재 몸값 싸졌다 미래 대비 지금 낚아라 [중앙일보]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내 첫 사업으로 파이버먹스라는 회사를 차렸을 때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차고를 사무실 삼아 1년간의 갖은 고생 끝에 광역통신망 관련 시제품을 만들었다. 제품 성능은 자신 있었지만 이를 고객들에게 알리고 파는 마케팅과 영업이 막막했다. 고민 끝에 내가 미국으로 건너와 두 번째 다닌 광섬유 통신회사의 계열사 사장이던 딕 배스라는 사람을 찾아갔다. 그에게 판매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15%의 지분을 주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주저하던 그는 1주일에 걸친 삼고초려에 결국 ‘오케이’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매출이 발생하자 여기저기서 투자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종잣돈이 이후 성장의 밑거름이 된 건 물론이다. 사실 딕은 내 직장 상사였다. 내가 차린 회사에 오면서 상하관계가 서로 바뀐 셈이다. 한국보다 서열 의식이 옅은 미국이라지만, 그도 나도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나로서는 사업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 끝에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면서 나의 사업은 본궤도에 올라선 것이다.
위기다. 경제가 바닥이고 기업이건 가계건 죽을 맛이다. 나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인재를 생각하곤 했다. 언젠간 불황터널의 끝이 올 것이다. 그 때 어른거릴 기회를 낚아채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위기를 견디고, 그 후 더 큰 발전의 토대를 닦을 인재를 찾는 것이 바로 최고경영자(CEO)의 몫이다. 더구나 어려울 때일수록 좋은 인재의 몸값이 싸지지 않는가. 금융위기로 미국 월가가 주저앉으면서 예전 같으면 수십∼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줘도 구하기 힘든 금융전문가가 인력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를 틈타 금융전문가 구인에 혈안이 됐다고 한다. 내 첫 번째 사업을 팔고 두 번째 기업인 자일랜을 세웠을 때도 가장 신경 쓴 것은 사람이었다. 두 번째 창업 때는 자금 여유가 좀 있어 좋은 인재 확보에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다. 30개 해외지사에는 그곳의 생생한 정보와 시장을 꿰고 있는 현지인을 썼다. 여기저기 세웠던 연구개발(R&D)센터에도 최고급 인력을 썼다. 사업은 사람이 한다. 핵심인재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잡을 용기가 필요하다.
김윤종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sykglobal@gmail.com
◆김윤종(60) 이사장은 20대인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가 1993년 자일랜을 창업했다. 99년 이 회사를 프랑스 알카텔에 20억 달러에 팔아 ‘아메리칸 드림’이자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2007년 귀국해 SYK글로벌 대표로서, 벤처투자와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